'북한, 90년대 최악 식량난 재연 중' - 유니세프

서울에서는 23일 북한에서 인도주의 사업을 펼치고 있는 세계식량기구 WFP와 세계보건기구 WHO, 유엔아동기금 UNICEF 등 유엔 산하기구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유니세프 북한사무소 대표는 북한의 최근 식량난은 수많은 아사자를 낳았던 지난 1990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을 방불케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근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고팔란 발라고팔 유엔아동기금, UNICEF 북한사무소 대표는 23일 북한이 1990년대 말의 최악의 식량난 상황과 비슷한 사정에 놓여있다고 말했습니다.

발라고팔 대표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북협력 민간단체협의회 주최 학술회의에서, "현재 북한의 식량 사정은 엄청나게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1990년대 말에 있었던 최악의 식량난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발라고팔 대표는 "지난 5월 북한의 두 지역을 방문한 결과 북한의 식량 상황이 굉장히 악화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배급체제는 붕괴되고 있었다"며, "식량 상황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발라고팔 대표는 이어 "최근 북한 농업성이 올해 곡물 수확량을 4백80만t 정도로 추정했지만 집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 참석한 세계식량계획, WFP의 장 피에르 드 마저리 평양사무소장은 북한의 식량난이 우려되는 상황인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1990년대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마저리 소장은 현재 북한 내 1백70여 개 작은 도시의 4백만 명에 식량을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라 위기는 넘겼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그동안 한국의 식량 지원에 크게 의존해 온 점을 고려하면 올해 식량상황은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식량 가격과 관련해 마저리 소장은 "지난 6개월 간 유로화 기준으로 쌀은 4배 이상, 옥수수는 3배 이상 값이 올랐다"며 "북한 당국과 논의한 결과 심각한 상황이라고 결론 내리고 6월부터 인도적 식량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식량과 연료 가격을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마저리 소장은 이와 관련해 북한 당국이 유엔을 통한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 과정에서 전례 없이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저리 소장은 "북한 당국이 최근 보이고 있는 협조적 태도는 엄청난 진전"이라며 "앞으로도 지금 수준의 협조 관계를 북한 당국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저리 소장은 하지만 북한 식량난의 한 원인으로, `식량 자체가 있느냐 없느냐 보다 `식량 접근권'이라는 이슈가 중요할 수도 있다'며 식량 수급과 관련한 지역별, 사회집단별 차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양강도와 함경북도 등 동북부 지역이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회의에는 마저리 소장 외에도 존 오 데아 식량농업기구(FAO) 북한사무소 대표, 싸베시와 푸리 세계보건기구(WHO) 북한사무소 대표, 유유 유엔인구기금(UNFPA) 북한사무소 대표 등이 참석해 북한 사회의 실상을 전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평양사무소의 보건의료 전문가인 아빈드 마서 박사는 식량난이 장기화되면서 여성들과 유아들이 만성적인 영양 부족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북한의 산모들은 빈혈이나 영양부족, 야맹증, 저체중 출산 등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마서 박사에 따르면 북한에서 출생아 10만 명당 산모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산모 사망률은 97명에 달했습니다. 또 신생아 1천 명 중 생후 1년이 못 돼 사망하는 수를 나타내는 영아 사망률은 20.23명, 5살 미만 유아 사망률은 40.87명입니다. 이는 남한의 유아 사망률에 비해 8배에서 10배 가량 높은 수치로, WHO 기준으로 '영양불량 위험 국가'에 속하는 수치라고 마셜 박사는 설명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싸베시와 푸리 북한사무소 대표는 "북한에는 병원 5백 여개의 병원과 4천 여명의 의사 등이 있어 통계상으로는 보건 환경이 좋아 보이지만 시설은 낙후됐고, 의료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의료진의 역량을 강화하고 의료시설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북한 아이들이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진 이유가 영양 부족 외에도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고팔란 발라고팔 유엔아동기금 북한사무소 대표는 북한은 상수시설이 낡은데다 전력이 부족해 양수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안전한 물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발라고팔 대표는 "북한의 상수 시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UN과 민간단체들이 중력을 이용해 물을 공급하는 공급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발라고팔 대표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관계자들이 최근 북한사무소를 다시 여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들었다"며 "이 문제가 내년 1월 UNDP 이사회에 상정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