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관계 개선…북 핵 합의 이행이 관건

북한의 핵 신고와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가 현실화 되면서 미-북 관계가 과거의 적대적 대립상태에서 벗어나 앞으로 본격적으로 진전을 이룰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북 관계가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무 이행이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통보를 계기로 살펴보는 특집기획, 오늘은 미-북 관계의 향후 의제와 전망에 관해 김근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에 따른 상응 조치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중단하고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기로 하면서 미-북 관계 개선을 향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북 관계가 정상화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대우 받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성국 교역법 적용 등 주요 제재를 해제한 것은 양국 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북 관계가 정상화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며, 특히 북한의 비핵화 의무 이행이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에반스 리비어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은 "미-북 관계 정상화는 많은 요소들과 연관돼 있으며, 북한의 비핵화도 그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미국이 제시할 상응 조치 중 하나로 미-북 관계 정상화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힐 차관보는 6자회담 3단계에서 미국이 북한에 제시할 조치로 양국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 대북 경제 지원과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위한 협력, 민간 핵 지원, 동북아 안보체제 구축 등 5가지를 꼽았습니다.

미-북 관계 진전에 맞춰 단기적으로는 양국 간 연락사무소 설치와 특사 교환 등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은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에 앞서 조만간 최소한 연락사무소 설치가 재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양국 관계 개선에 따라, 클린턴 정부 시절인 지난 2000년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교차방문 같은 특사 교환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이번 대북 제재 해제 조치를 양국 관계의 확고한 진전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이 핵 포기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두 나라의 관계는 언제든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제재 해제에 앞서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이행하지 않거나 미국을 기만하면, 풀었던 제재를 다시 가하고, 새로운 제재도 더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북 관계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매우 신중한 편입니다. 비핵화 3단계에서 다룰 핵무기 폐기 문제는 핵 시설 불능화나 핵 프로그램 신고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제관계센터'의 존 페퍼 국제 담당 국장은 "북한이 리비아처럼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승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하지만 북한은 마지막 협상 카드인 핵무기 포기를 매우 주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워싱턴 소재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 연구원도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전직 국무부 관리의 말 등을 종합하면, 6자회담 3단계 조치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입장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2단계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년에 미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는 점도 양국 관계 개선에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미-북 관계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특사 교환방문과 제재 해제로 전환점을 맞았지만,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급속도로 냉각됐던 전력이 있습니다.

현재 미-북 관계가 당시와 다른 점은 양국 간 협의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일관성이 있고, 차기 대선 후보들도 부시 행정부가 이룬 대북 외교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머리를 맞대고 비핵화 2단계까지 진전을 이뤄온 현 부시 행정부와 핵 협상을 마무리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