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0년 동안 수 백명의 여성 박사를 배출했다는 보도엔 일단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탈북민 출신 전문가가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앞서 나간 평가일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오택성 기자입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지난 30일 보도를 통해 지난 10년간 북한에서 배출된 여성 박사의 수가 350명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동물 단백질의 분해 특성을 밝혀 첨가제를 개발한 윤정애 국가과학원 실장과 장마철 기상 예보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심명옥 기상수문국 부대장 등 여성 과학자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습니다.
북한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으로 지난 2004년 탈북한 현인해 한국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3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내 이 같은 소식은 일단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이런 부분이 부각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녹취: 현인해 연구위원] 여성들이 이전과는 달리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과거에) 없던 것 보다는 물론 낫다고 생각을 해야 하겠죠. 여성의 지위 상승 측면에서.”
현 위원은 다만 이를 통해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앞서 나간 평가일 수 있다고 경계했습니다.
특히 350명이라는 숫자엔 남자 박사 학위자와 여자 박사 학위자의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담겨있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현인해 연구위원] “(과거) 국제 사회에서 다른 나라와 평양을 비교하면 박사 숫자가 매우 적은거죠. 그 숫자를 비슷하게 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 내에서 박사 (학위자) 숫자를 대대적으로 늘리고 있어요. 근데 총 비율에서 (여성) 박사 수가 퍼센트로 볼 때 몇 퍼센트일까를 계산하지 않는 한 여성들의 진출이 더 많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탈북민 출신의 북한인권 활동가인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북한이 이번 보도에서 ‘박사’ 명칭을 사용한 것에 주목했습니다.
북한에도 ‘박사’, ‘준박사’는 있지만 이는 잘 쓰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북한에서는) 박사라는 칭호보다는 ‘노력 영웅’, ‘공화국 영웅’ 등의 호칭이 더 잘 다가오는 거죠. 특히 여성들한테요. ‘박사’라는 칭호는 사실 많이 없었어요.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여성 박사 350명을 배출했다는 게 북한 실정에서는 애매한 말인 것 같고요.”
박지현 대표이 같은 이유로 북한이 굳이 ‘박사’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외부 세계에 보통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박지현 대표는 북한에서 여성이 박사 학위를 받는 다는 것이 사회 통념상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북한이 1946년도에 발표한 남녀평등권을 보게 되면 여성들은 가정에서 자식들을 혁명에 충성하도록 키우고 기본 내조를 한다는 부분이 있어요. 여전히 북한에는 남아있어요. 그런 가부장적인,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보다는 가정에 충실하라는.”
현실적으로도 북한 여성의 경우 보통 25세를 전후해 결혼하는데 이 기간 안에 박사 학위를 따기 힘들고 또 결혼 후에는 사회 활동보다는 가정 생활에 전념하는 여성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성 박사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고 박지현 간사는 덧붙였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의 이번 보도 내용과 비교했을 때 여성 박사 규모에서 북한은 미국과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선 지난 2002년 1천 600명 가량의 여성 박사 학위 취득자가 배출된 이후 그 숫자가 계속 증가해 2017년에는 5천 400명에 이르렀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증가했을 뿐 아니라 여성 박사 학위자의 비율은 2002년 전체 박사 학위 취득자의 23%에서 2017년에는 37%까지 증가했습니다.
미국은 오히려 여성 박사 학위자의 수가 남자 박사 학위자 보다 많습니다.
미 대학원 협회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과 2017년 2년 동안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약 7만 8천 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절반 이상인 53%로 4만 2천 명에 달합니다.
특히 ‘보건 과학’과 ‘교육’, ‘공공행정’ 등의 분야에서는 여성 박사 학위자 비율이70%를 넘는 등 강세를 보였습니다.
VOA뉴스 오택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