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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전문가 "북한, 남북 협력보다 미북 대화에 올인"


지난 1일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은 남북 협력보다 대미 압박과 협상을 통한 제재 해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러시아 전문가가 진단했습니다. 북한의 농업 등 경제 개선에 관해서는 과거 중국의 성공과 옛 소련의 실패를 예로 들며, 사유재산을 허용하지 않고 통제경제를 유지하는 한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러시아 국책연구기관인 과학아카데미 산하 국제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부원장을 지낸 바실리 미헤예프 현 아태연구센터장을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미-북 대화가 장기 교착 상태에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남북 협력을 적극 넓혀가면서 비핵화를 추동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호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바실리 미헤예프 아태연구센터장.
바실리 미헤예프 아태연구센터장.

미헤예프 센터장) “북한의 차가운 반응은 새삼스럽거나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닙니다. 북한 당국의 협상 논리는 남북관계 촉진이 아니라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한 제재 해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북 간 비핵화 중재 역할을 계속 원하지만, 북한의 대남 메시지는, 우리는 그게 필요 없다는 겁니다. 북한은 문 대통령이 대북 경제 지원과 원조 약속을 지키지 않다가 이제 (총선 등) 일부 국내 문제 때문에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그런 게 필요 없고, 미국과 직접 상대하겠다는 겁니다.”

기자) 북한 당국이 한국 정부의 제의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미헤예프 센터장) “북한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저는 관여 정책을 통해 남북관계를 촉진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도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보면, 문 대통령의 관여정책은 장기적으로 옛 소련이나 동유럽 공산국가들처럼 북한의 변화를 궁극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목표가 있을 겁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런 시도가 소용이 없을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 당국은 탄핵과 대선 등 녹록하지 않은 국내 정치적 상황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을 계속 압박하면서 직접 상대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기자) 과거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전략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작다고 전망하셨는데,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미헤예프 센터장) “과거 6자회담 구도로 보면 5개국과 북한, 양측의 입장이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한국 등은 전술적으로 보면 북한의 핵 폐기를 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가 정권의 안전을 지켜줄 유일한 최선의 수단으로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재 해제와 현금 등 상대의 양보를 최대한 이끌어 내면서 많은 단계들을 만들어 협상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핵무기 해체는 체제안전과 직결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수용하기 힘들 겁니다.”

기자) 그럼 김정은 위원장이 현 상황에서 추구하는 게 뭘까요?

미헤예프 센터장) “김 위원장이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을 통해 원하는 3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 시간을 버는 겁니다. 2년 전에 김 위원장은 군사 행동까지 불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 직면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언급을 하지 않고 대화를 얘기합니다. 둘째는 경제적 시간을 버는 겁니다. 한국으로부터 경제 지원과 원조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실패했습니다. 셋째는 기술 시간입니다. 핵 물질과 미사일 관련 능력을 고도화하는 준비태세를 버는 시간입니다. 첫째와 셋째는 성공했지만, 둘째 경제적 시간은 제재 유지로 한국의 지원마저 막히면서 실패했습니다. 따라서 제재 해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것은 한국 아닌 북-미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기자) 대북 제재의 효과에 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미헤예프 센터장) “제재는 상대가 시장경제체제일 때 작동합니다. 민간인들을 겨냥할 때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같은 전체주의 정권은 외교나 현금 거래가 없기 때문에 작동하기 힘들고, 위반 행위도 포착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제재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제재가 효력이 없고 북한의 경제 상황이 괜찮다는 얘긴가요?

미헤예프 센터장) “아닙니다. 북한의 경제가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경제모델은 통제경제에 따른 분배 체제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아주 깊고 구조적인 위기를 안고 있죠. 마치 옛 소련이나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붕괴할 수밖에 없던 경제체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가 늘 좋지 않고 시장은 회색시장(gray market)이나 암시장(black market) 체제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10%는 제재 등 어떤 상황에서도 경제적 고통을 그리 겪지 않는다는 겁니다. 종합시장(장마당) 등 여러 곳으로부터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죠. 뇌물이 만연돼 있고 관리들은 아주 부패해 있습니다.”

기자) 김정은 위원장은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경제 중 농업 부문의 정면 돌파를 상당히 강조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포전담당 책임제 등 여러 개혁 조치를 주목했는데, 성과가 미미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농업의 정면돌파 구호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미헤예프 센터장) “그것은 개혁 조치가 아닙니다. 문제는 한국의 많은 전문가가 사회주의 경제체제나 통제경제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개인의 사유화는 절대적인 금지 대상입니다. 개인의 영리를 위한 민간 경제활동은 ‘적’이자 범죄입니다. 군대를 비롯해 여러 기업소가 사업 활동을 하지만, 그게 민영화는 아닙니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옛 소련의 상황과 당시 중국을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사유재산을 허용했습니다. 경작지가 농가에 분배돼 자유로운 생산과 매매가 허용됐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옛 소련은 사유재산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물을 받았던 소련 지도부는 더 부패하게 됐고 경제개혁은 실패했던 겁니다. 사유재산을 허용하지 않는 시장개혁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유재산은 북한에서 여전히 사상적으로 적입니다.”

기자) 그래도 집단농장체제에서 분조원을 대여섯 명의 가족형으로 규모를 줄이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것은 신선한 시도란 평가가 있습니다.

미헤예프 센터장) “그렇게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에 실질적인 법적 제도와 보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지역 당국자나 당 비서 등 관리들이 그런 제도를 허용한다고 한 뒤 나중에 부족하다며 강제로 더 요구하면 주민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뇌물이 성행하는 것이고 개선은 기대하기 힘든 겁니다.”

기자) 올해는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를 체결한 지 30주년을 맞습니다. 두 나라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한국으로 연결하는 파이프라인과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 등을 지지해 왔는데, 북한의 미온적 반응으로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도 있었는데, 걸림돌이 뭔가요?

미헤예프 센터장) “우리는 그 프로젝트를 거의 30년 가까이 얘기했는데, 결과가 아직 없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안전 문제입니다. 누구도 지금 상황에서 북한에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대북 제재도 있지만, 투자 위험 때문입니다. 둘째는 더 큰 문제인데요. 북한이 시장경제 사회가 아니란 겁니다. 시장 원칙을 적용하기 힘들고 투자금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국가든 민간이든 투자에 너무 큰 위험이 따릅니다. 시장개혁이 개방과 이런 투자를 이끌지만, 북한의 상황을 봤을 때 앞으로 몇 년 동안은 한-러 프로젝트가 실현되는 것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기자)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말씀이시군요.

미헤예프) “외교적 관료주의입니다. 외교적으로 남-북-러 3자 프로젝트를 하자고 말하지만, 누가 투자할 것인가 물으면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겁니다. 북한이 안보를 우려하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정상적인 경제, 정상적인 조건 없이 진전이 힘들다는 겁니다. 함경북도 청진을 봅시다.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청진에서 평양까지 거리는 700km 정도 됩니다. 하지만 걸리는 시간은 7일이 걸립니다. 7시간이 아닙니다. 왜냐구요? 전기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문제가 하나 있으면 다른 문제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옵니다. 외교적으로는 그런 프로젝트가 매우 좋다고 하지만, 이런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전을 기대하기 힘든 겁니다.”

러시아 국책연구기관인 과학아카데미 산하 국제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바실리 미헤예프 아태연구센터장으로부터 한반도 관련 사안에 관해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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